학점제의 전제조건은 수능 자격고사화다

김대유 경기대 초빙교수 | 기사입력 2019/11/28 [12:36]

학점제의 전제조건은 수능 자격고사화다

김대유 경기대 초빙교수 | 입력 : 2019/11/28 [12:36]

▲김대유 경기대 초빙교수. ©브레이크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수능정시 확대를 선언했다. 그리고 고교 학점제를 도입하겠다는 교육과정의 학점제를 예고했다. 그냥 가만히 있지, 이렇게 상반되고 모순된 교육정책을 내놓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수능의 정시를 확대하면 학점제는 못한다. 학점제를 하면서 수능정시를 확대할 수는 없다. 입시정책과 교육과정정책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연동되기 때문이다. 수능자격고사화와 학점제가 쉬운 정책은 아니다. 그러나 미래의 지향점에 수능자격고사와 학점제가 놓일 때 국민에게는 희망이라도 생긴다. 그러나 수능정시 확대는 입시정책의 사교육 강화와 중등의 단위제 교육과정이 앞으로도 계속 고정된다는 의미다. 미래에도 이대로 입시와 사교육비 지옥에서 살라는 뜻이다.

 

수능을 치룬 11월이다. 우리나라 입시제도를 논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가 학부모 이기심이다. 정부가 천문학적인 광고비를 들여서 학부모 이기심을 비꼬는 공익광고까지 내고 있는 마당이다. 땅은 좁은데 인구는 많고 어차피 경쟁은 불가피하니 입시는 필요악이라는 뜻이다. 정말 그럴까? 정부는 정책을 잘하려고 하는데 학부모들의 경쟁심이 아이들을 사교육시장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교육선진국의 입시를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첫째 대학입시가 중등교육을 종속시키지 않는다.

둘째 수학이 결정적으로 입시의 당락을 좌우하지 않는다.

셋째, 국가보다는 대학이 선발의 자유를 갖고, 동시에 대학도 한국처럼 국영수같은 지필고사로 줄을 세워 선발하지 않는다. 주로 에세이를 본다.

 

한국은 다르다. 입시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온 국민이 사교육에 매진하고 수학을 못하면 문과 학생도 대학을 못가며 대학들은 어리석게도 정부가 수능과 내신을 통해 아이들을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줄을 세워주면 거지가 배급받듯이 서울대를 필두로 죽 줄서서 나눠 갖는다. 그런 현실이니 대학도 발전을 못한다. 특정 대학을 지목해서 미안하지만 교수평가와 학과 구조조정으로 난리법석을 피우는 비 SKY 대학들에게 할 말이 있다.

 

백년을 해봐라, 그러면 너희들이 연고대되나?”

 

SKY 대학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대학이 짜고 치듯이 지금의 입시구조를 유지하면 대학서열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외국사례를 살펴보자. 선진국 대학입시 제도의 특징을 살펴보는 일은 만성적으로 입시교육에 시달리는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유용한 일일 것이다. 교육선진국들이 우리나라처럼 수학을 못하면 누구나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는지, 수능 같은 국가입시제도가 존재하는지, 대학들이 1등부터 꼴찌까지 서열화하여 입시에 반영하는지 궁굼하다. 간략하게나마 미국, 프랑스, 독일의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미국은국가수준의 입시제도인 SATSAT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은 미국 대학입학시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이며 여러 개의 시험을 통칭한다. SAT에는 SAT논리력 시험(SAT Reasoning Test)SAT과목별 시험(SAT Subject Test)이 있다. 과목별 시험에서는 대략 4과목 정도의 심화과목을 보아야 한다. SATSAT는 학과목 문제풀이식인 한국의 수능과 달리 지능검사형의 성격을 지닌다. SAT는 연간 8회정도 실시한다. 복수 응시가 가능하니까 사실상 문제은행 방식이다. SAT은 응시선택권을 보장하고, SAT에서는 대학별로 외국어, 수학, 과학, 문학 4과목 중 문이과의 성격에 따라 2과목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인문계 전공의 대학을 진학하는 입장에서 굳이 수학이나 과학을 선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반면에 이공계를 진학할 경우 굳이 문학이나 외국어를 선택할 이유도 없다. 대부분의 대학은 응시서류에 SAT의 성적을 첨부하게 하여 반영하지만 특별한 경우 SAT을 전혀 반영하지도 않고 입학사정관제에 의해 선발하기도 한다. 입학사정관제는 미국에서 처음 시작하여 지금은 여러 나라가 시행하고 있는 보편적인 선발방식이다.

 

프랑스의 바깔로레아 (Baccalauréat)는 대입자격을 위한 자격고사형이다. 바칼로레아를 합격한 학생은 대학입학자격이 주어지며 절대평가제이다. 약칭으로 bac이라고도 부른다. 바깔로레아는 논술 및 철학 시험을 필수로 한다. 바깔로레아는 영국의 A-레벨이나 미국 고등학교 졸업시험과 마찬가지로 표준화된 합격 증명서가 있다. 이를 통해 특정한 영역의 직업이나 대학 입학, 또는 전문 자격증이나 훈련을 받기 위해 쓰인다. 바깔로레아는 중등학교 마지막 해에 거의 모든 학생들이 시험을 본다.

 

또한 다양한 대학의 종류에 따라 바깔로레아는 계열별로 분화된다. 이과 적성별로 선택이 가능하며 계열에 따라 과목선택권을 보장, 7~8개중 3~5개의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즉 진로에 따라 수학이나 프랑스어조차 선택이 가능하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불어, 문학, 철학, 외국어, 역사, 지리 등을 선택한다. 특이한 것은 프랑스의 바깔로레아는 대학입시를 위한 자격고사이지만 그 주체가 고등학교 교사들이다. 대학입학의 도구가 아닌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가를 측정하여 고교교육을 책임지는 차원에서 시험을 주관한다. 이러한 용도로 인해 바깔로레아는 단순한 입시제도가 아닌 취업의 중요한 기준으로도 쓰인다. 꼭 대학을 진학하지 않더라도 바깔로레아를 통과하면 프랑스 사회가 어엿한 성인으로 인정하여 취업에도 가산점을 주는 것이다.

 

독일의 아비투어(Abitur)는 자격고사형이다. 8개 기본과목 중에서 3~4개 정도를 희망따라 선택하는 과목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 수학은 아예 선택과목이다. 대학에서도 전공별로 선택과목을 적용한다. 독일의 학생진로는 초기에 정해진다. 초등학교 졸업생의 50%는 일반 인문계 고교인 김나지움에 입학하고, 30%는 레알슐레에 진학하며, 20%는 하우스프트슐레르로 간다. 독일에서는 모든 학교가 주정부인 렌더(Länder)의 책임 아래 있으며, 초등교육과 중등교육 체제가 전국적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모든 주에서 국민교육은 8~9년제로 되어 있다. 이 단계 다음에는 초등학교 교사와의 상담과 부모의 요청에 따라 학생들은 레알슐레, 김나지움, 초등교육의 연속인 하우프트슐레 중 하나에 진학하게 된다.

 

한국의 수능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획일적이고 복잡하며, 100% 줄세우기로 점수화하는 방식이다. 수능은 단시 응시이고 사실상 과목선택권이 없다. 과목선택권이 없는 것은 고교 교육과정이 국가단위제 교육과정으로 학생이 시간표를 짜서 선택할 수 없는 체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향후 복수 응시하도록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수능이 문제은행이 아니기 때문에 난이도 조정이 어려울 것이다. 정말 복수응시가 가능한지는 다시 한번 검토해봐야 할 일이다. 수능의 보완책으로 수시와 특별전형, 입학사정관제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영어와 수학이 반드시 중요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수능 영역의 최저치 등급을 제시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국 국영수 성적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그러므로 대입제도에 따라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종속되고 파행될 수 밖에 없다.

 

해방이후 65년간 지속되어 온 6334 학제와 연중 2학기제, 연간 200일을 넘는 수업일수, 204단위 고교 교육과정, 1100시간이 넘는 중등의 수업시수, 이 모든 토양 위에 쌓아 올린 세계 최고의 학생자살률과 사교육비, 저출산의 재앙은 지금 분명 인재(人災)임을 자각해야 할 때이다.

 

*필자/김대유 경기대학교 초빙교수. 한중교류촉진위원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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