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퀴리 부인’으로 더 잘 알려진 마리 퀴리(로지먼드 파이크 분)의 실화를 그린 영화 <마리 퀴리>가 오는 18일 개봉을 앞두고 10일 기자시사회를 개최했다.
영화는 1934년 퀴리 부인이 쓰러져 병원에 가는 장면으로 시작해 곧바로 1893년 그녀가 남편인 피에르 퀴리(샘 라일리 분)와 만나게 된 장면으로 넘어간다.
폴란드인에다 여성이기까지 한 그녀는 연구실에서 쫓겨나고, 그때 그녀를 2번 밖에 안 만난 피에르 퀴리가 자신의 연구실을 같이 쓰자고 제안해 결국 둘은 공동연구를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둘은 가까워지고 결혼해 큰딸 이렌(안야 테릴러 조이 분)을 낳는다.
퀴리 부부의 연구는 계속되고 드디어 피치블렌드(역청 우라늄석) 4톤에서 소량의 라듐을 추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플로늄과 라듐이라는 2개의 원소를 발견하게 되고, 마리 퀴리는 이를 방사능으로 명명한다.
이 일로 그동안 과학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아 교수 임용에 번번히 실패하던 피에르 퀴리가 드디어 교수에 임용된다.
이렇게 과학계에서 대단한 발견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리 퀴리는 여자라는 이유로 노벨상 후보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다.
이에 남편이 자신과 공동연구를 했다며 강하게 항의해 두 사람은 1903년 노벨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아이를 돌보느라 마리 퀴리는 집에 남고 남편 혼자 참석한 노벨상 시상식에서 피에르는 “인류가 새로운 발견을 해롭게 쓰지 않기 바란다”고 소감을 말한다.
하지만 그의 이런 바람과는 달리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시 파리로 돌아온 피에르는 누적된 방사능 노출로 인해 건강이 쇠약해져 어느 날 밤, 달려오는 마차를 피하지 못해 끝내 사망하고 만다.
이에 마리 퀴리는 죽은 남편의 후임 교수로 발탁되고, 이는 소르본 최초의 여교수라는 신기록이 되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 큰딸 이렌이 어느덧 장성해 의사가 된 후, 마리는 이렌의 손에 이끌려 참전용사들이 입원한 병원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제대로 검사도 받지 않은 채 팔과 다리를 절단하는 모습을 보고 이동식 방사능 검사장비를 개발한다.
노벨상을 2번이나 수상한 위대한 과학자였던 마리 퀴리. 하지만 그녀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남편이 죽은 후에는 그녀가 원래 폴란드인이라는 이유로 프랑스를 떠나 본국인 폴란드로 돌아가라는 주민들의 공격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남편이 묻힌 곳이자 두 딸의 고향인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며 버텨냈다.
또 이동식 방사능 검사장비 개발비용을 지원해 달라는 그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자 노벨상 메달 2개를 가지고 가 이깟 메달 녹여서 전쟁 자금으로 쓰고, 대신 개발비를 달라며 읍소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평생의 소원인 메달이고, 또 국가적으로도 매우 영광스러운 메달이지만 자신의 지식으로 전쟁 피해자를 구할 수 있다면 그깟 메달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를 통해 그녀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지금도 그가 만든 검사 장비가 병원에서 쓰일 정도로 인류에 공헌을 한 마리 퀴리.
그런 위대한 과학자를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계속 무시했더라면 과연 지금 우리 삶이 어땠을지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다.
/디컬쳐 이경헌 기자
원본 기사 보기:
디컬쳐